2018. 7. 29. 18:08ㆍTravel
2018년 4월 3일
부산을 떠난 비행기는 두 시간여 만에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강풍으로 악명 높은 활주로답게 험난한 착륙으로 간담이 서늘해져 내렸어요. 오클랜드행 항공기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 공항 안 카페에서 편히 쉬며 작업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공항 밖의 일본을 그냥 두자니 도저히 아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와이파이나 데이터 없이 저번 일본 여행 때 남긴 4천 엔으로 작은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내데스크에서 지도와 정보를 얻었습니다. 시간이 줄어드니 목표가 더욱 명확해졌어요. 나리타 시는 나리타 산 신쇼지(일본 불교 진언종)가 유명하지만, 시간이 짧기에 그저 '일본의 차분한 정서가 느껴지는 고즈넉한 카페'에 충분히 머물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내소 직원이 추천해준 전통 카페를 기점으로 삼아 공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로로 길을 나섰습니다. 여름이 언뜻 비치는 남쪽 지역의 후끈한 열기는 160엔짜리 자판기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가라앉히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케이세이 선을 타고 공항 터미널 역을 빠져나가자 창문으로 나리타 시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한국의 벚꽃나무들은 가장 아름다운 때를 향하고 있는데, 나리타의 봄은 이미 절정이 지난 상태였어요. 제 할 일이 끝난 벚꽃잎들은 바람에 몸을 싣고 봄의 여백을 유랑하고 있었습니다.
고베의 '고즈넉함'과 교토의 '차분함'을 섞어 놓은 곳. 제 눈에 비친 나리타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나리타 시내는 정말 작아서 두세 시간이면 지하철 역까지 돌아올 수 있어요. (나리타 산 신쇼지도 둘러본다면 한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금 걷다 보니 안내소 직원분이 추천해주신 카페가 나왔습니다.
三芳家(Miyoshiya)
386-2 Naka-machi, Narita City, Japan
三芳家(Miyoshiya)라고 적혀 있는 나무 간판이 걸린 골목으로 스윽 들어가면 일본식 정원 속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가 나옵니다. 중간에 아담한 정원을 끼고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바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 카페의 대표 음식인 전통 빙수 한 그릇과 핸드드립 커피를 시켰는데 제 입맛에는 조금 짜웠어요. 맛보다는 원하는 분위기에 취했달까요. 낮은 높이의 창문과 눈앞에 바로 보이는 정원, 햇볕이 조명처럼 각자의 테이블을 비추는 채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이 찻잔 위로 슬며시 내려앉는 시간이었어요. 지하철 역으로 돌아갈 때는 왔던 길이 아니라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북적이는 길가가 아니라 조용한 골목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짧지만 충만했던 3시간의 산책을 마치고 에어 뉴질랜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경유지에 도착해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면 짧은 거리의 도시를 잠깐 둘러보는 것도 훌륭한 여행 방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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