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북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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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 산책 - 고대 유적 기록물부터 현대 미술, 뉴질랜드 페미니즘 제2물결까지
본격적인 겨울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놀라운 건 장마라고 해서 하루 종일 흐린 우울한 날씨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몇 분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가, 금방 햇볕이 들었다가, 또 흐려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다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가 하기 때문에 꽤 재밌고 지루하지 않은 장마입니다. 하도 순식간에 바뀌어서 순번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햇빛과 비가 서로 겹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빛이 야자수 나뭇잎 끝에 달린 빗방울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귀고리의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제 생애 이렇게 활기찬 장마는 없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덕분에 자연이 아닌 문화 속에서 모험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Auckland Art Gallery / Toi O Tamaki) *2018년 5..
2022.02.05 -
일요일의 웰링턴 산책 (2) ─ 판도로 빵집과 뉴질랜드 첫 가톨릭 미사
2018년 8월 5일 일요일 부둣가를 걷다가 성당으로 향하는 빅토리아 스트리트로 발길을 돌린 건 허기가 느껴질 즈음이었습니다. 뉴질랜드 포트레이트 갤러리(New Zealand Portrait Gallery)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오전 10시 30분에나 문을 열어서 포기해야 했거든요. 스파크 와이파이존을 벗어나자 스포티파이 앱에서 듣고 있던 음악이 뚝 끊겼습니다. 오랜 세월 귀에서 음악을 거의 떼지 않고 살았지만 환경이 바뀌어 저도 이제는 덤덤하게 이어폰을 귀에서 뺍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모험을 결심하고 나서는 짐을 쌀 때부터 삶의 부피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고, 더 나아가 길 위의 생활자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보다 살림살이를 더 줄여야 합니다. 물건뿐만 아니라 '습관'면에서도 마찬가지입..
2018.08.05 -
일요일의 웰링턴 산책 (1) ─ 고대하던 평범한 주말을 맞이하다
2018년 7월 26일 목요일 6월의 마지막 날부터 7월 15일까지 또다시 웰링턴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일주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일정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두 배가 되었고, 그 기간 동안 현장 두 곳을 모두 마무리해야 하는 까닭에 체력의 한계까지 짜내야 했습니다. 지금껏 보아온 것들을 종합하자면, 한국이든 외국이든 할 것 없이 세상 모든 건축 일은 변수로 인한 딜레이와 씨름하는 게 절반인 듯했습니다. 새벽에 숙소로 가는 길에 본 또 다른 키위 인테리어 회사의 직원도 밴 안에서 고단한 표정으로 쪽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현장이 클라이언트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에 종종 현장 외적인 일에 대한 책망도 모두 다 감내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마감이 매우 급한 상황이라 주말까지 쉬지 ..
2018.08.05 -
뉴질랜드 라글란에서 생일을 (2) ─ 마누베이 서핑과 중심가 산책
2018년 6월 26일 화요일 와나우 캠핑장의 아침 은은한 빛이 눈꺼풀에 닿습니다. 간밤에 꿈에서 봤던 물고기들이 머릿속을 희미하게 헤엄치고 다녔어요. 어, 이거 분명 길몽인데! 하늘이 생일 선물로 툭 던져 놓고 간 게 틀림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하니 잠에서 깨기도 전에 미소가 번졌어요. 생일은 하루 지났지만 이왕 주말에 낀 거 일요일까지만이라도 즐거운 기분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4월 초 오포우티어 캠핑 이후로 드디어 두 달 반 만에 야외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입니다. 오포우티어에서 피톤치드에 취해 아침부터 정말 기분이 좋았거든요. 여기서도 얼른 상쾌한 아침을 누려야겠습니다. 앞좌석에 놔둔 세면도구와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차 안의 공기가 새벽처럼 으슬으슬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2018.08.04 -
웰링턴 여행, 웰링턴 '출장'이 되다
2018년 6월 9일 토요일 웰링턴으로 웰링턴에서 일손이 급히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원래는 여행으로 계획했었다가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지원해준 비행기 티켓이 이메일로 날아왔어요. 수요일 오후 네 시 비행기였습니다. 그전까지 하던 글 작업을 모두 마무리해야 했어요. 마감시간이 코 앞에 찾아온 글 노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OO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를 떠나기 전날 발행했고, 여행 짐은 당일 날 아침에나 챙길 수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생각이 느린데 꾸물거릴 시간이 별로 없어서 평소보다 생각 회로를 몇 배속으로 가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웰링턴이 많이 춥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추운지 몰라서 껴입을 수 있는 얇은 겨울옷들을 배낭에 넉넉하게 챙겼습니다. 사실, 옷도 별로 없어서 ..
2018.08.01 -
와리 푸카푸카(Whare Pukapuka), 뉴질랜드 도서관 탐험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모험이라고 해서 항상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앉은 곳이 어디든 시공간을 단숨에 초월할 수 있는 모험이 있지요. 필요한 것은 언어 능력과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여행비.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모험은 꽤 오래전에 우리의 기록 본능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바로 타인의 기록을 읽어내는 일, '독서'입니다. 한 달 동안 글을 쓰면서, 출력이 아닌 입력에 대한 강한 허기를 느꼈습니다.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하고 웹 상에 쓰인 타인의 기록들을 아무리 읽어도 좀처럼 허기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실물'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인쇄된 글자를 읽으며 종이의 감촉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제야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
2018.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