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잘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감독의 영화
우리는 글이나 회화, 데생을 통해 세상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비해 전자의 결과물은 실제와 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백지에서 작가의 노력에 의해 글자와 물감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생각이나 의식이 완전하게 투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회화나 산문을 통한 묘사가 '세밀히 선택된 해석'일 때, 사진은 '세밀히 선택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사진의 조작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진이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정도가 글이나 그림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특성 덕분에 사진은 증거 자료로 활용되며 본인 확인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사진이 충실히 이 세상만을 반영하기만 할까요? 똑같은 사건을 두고 100..
202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