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환한 빛으로 가득 찬 고요, Hammock의 "Silencia"

2022. 2. 19. 19:00Art

반응형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변함없이 일상을 이어가야 할 때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지요. 시간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는 없으니 엉망인 상태에서라도 최선의 결정과 행동을 이어나갑니다. 예민하고 여린 사람들은 벅찬 현실을 헤쳐나가는 와중에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도 감당해야 합니다. 심지의 가장 끝을 향해가는 초의 불꽃처럼 그렇게 번 아웃은 찾아옵니다.

요가와 비파사나(Vipassana, 위빳사나) 명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 즈음이었습니다. 빈틈없는 스케줄 속에서 긴장과 집중을 이어가는 일이 상당한 피로와 시간 결핍을 가져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최대한 차단하며 일에 몰입했지만, 완전히 혼자 있는 순간에는 나의 민낯으로 돌아와 애쓴 자신을 치유해주고 싶었습니다. 평소 즐겨 듣던 베이스 강한 음악들이 듣기 버거워지면서 노랫말이 들리지 않는, 나의 숨소리 같은 음악이 필요해졌습니다. 

보통 요가나 명상 음악으로 묶인 플레이리스트가 많지만 그마저도 나에게 과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명상 음악들은 지나치게 어둡고 우울하며 무섭기까지 했지요. 민낯과 무표정의 음악, 그렇지만 슬프지 않고 따뜻한 힘을 주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기적처럼 Hammock이라는 아티스트의 'Circular as Our Way'라는 곡을 발견했습니다. 일정에 에너지를 쏟아내고 온몸에 힘을 뺀 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심결에 듣고 있다가 아마도 눈물이 맺혔던 것 같습니다. 현악기가 음역을 조심스레 채웁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순회한다'는 뜻의 제목도 와 닿았습니다. 순회라는 말속에는 일상을 반복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우리만의 방식'이 더해져 주체성을 얻었습니다. 그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내가 끌어안아야지. 나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을 거야. 생각이 바뀌어갈 때 어느새 트랙의 끝에는 익명의 콰이어만 남아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필요하던 음악을 찾아냈습니다. 이 트랙은 Hammock의 2019년 음반 [Silencia]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Hammock

 

 

 

Silencia

Listen to Silencia by Hammock #np on #SoundCloud

soundcloud.com

▲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Hammock의 [Silencia] 음반 전체 듣기

 

 

 

음반의 표지는 채도가 조금 낮은 하늘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총 11곡이 1시간 가량 영화를 보듯 하나의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이 음반은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제 일상의 많은 시간과 함께 하며 잠에 쉽게 들지 않는 밤에는 수면을,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싶은 순간에는 솔직함을 선물해주고 있습니다. 

 

 

ⓒ Hammock

 

Hammock은 미국 테네시 내쉬빌 출신의 마크 버드(Marc Byrd)와 앤드류 톰슨(Andrew Thompson) 두 멤버로 구성된 앰비언트/포스트락 밴드입니다. 2005년부터 10개의 정규 음반과 5개의 EP를 발매했습니다. 비트와 노랫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4번째 EP인 [Longest Year]부터였는데, 그 해 기록적인 홍수로 마크 버드의 집이 무너지고 나서 번 아웃으로 고통을 겪은 후 탄생한 음반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들의 음악은 지평과 스케일이 매우 방대해졌고 오케스트라 요소가 한층 더 도입되었습니다. 제가 차분한 빛과 희망을 바라며 이 음반을 찾았듯이 두 아티스트는 절망 속에서 음악을 부여잡고 수면 위로 오르려고 했었나봅니다.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혹은 자신만의 시간 동안 깊이 있는 몰입을 끌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음반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분노와 짜증에 휩싸인 사람들도 나쁜 감정이 올라올 때 이 음반을 들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누군가 한 명쯤은 제가 이 음악에 말로 다 표현 못할 도움을 받은 것처럼 그 마음이 빛을 향해 움직일 테니까요. 평온의 섬 사적인 파라다이스의 가장 어두운 곳에는 아마 이 음반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을 겁니다.

 

Tracklist

1. Circular as Our Way (7:00)

2. Silencia (5:09)

3. When It Hurts to Remember (6:16)

4. Afraid to Forget (7:08)

5. Saudade (5:18)

6. In the Shattering of Things (5:51)

7. We Try to Make Sense of It All (3:56)

8. Slowly You Dissolve (5:18)

9. Fascinans (4:16)

10. Life Is Life (3:48)

11. Without Form and Void (8:0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