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록을 경험하는 공간, 프랭코의 <HOMEMADE>

2022. 6. 26. 17:50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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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남천동 타코들며쎄쎄쎄에서 사진전을 하고 있다. 5월부터 7월까지 넉넉한 기간으로 열린다. 덕분에 전시에 오시는 손님들도 급하지 않게 본인의 스케줄에 맞추어 한 번에 한 분씩 차분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일은 컨디션 관리. '체력과 기분이 무너지지 않게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진행했다. 그래서 4월에는 몸과 정신의 상태를 살피며 살얼음을 걷듯 할 일들을 해나갔다. 전시가 시작되었고 이제야 미뤄둔 피로가 한 움큼 밀려오고 있지만,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후련하다.


    "돈 쓰고, 시간 쓰고,
    피곤해서 아프고, 액자 때문에 짐만 늘고,
    이리저리 손해만 보는 사진전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손목 통증, 발목 통증, 최근에는 다래끼 초기 증상까지 달고 온 나에게 엄마가 잔소리를 투척한다. 그러게, 남는 것도 없는 이 행위를 나는 왜 매년 하고 있을까. 중간에 갤러리를 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꾸려 나가는 전시는 마치 '1인극'과 같다. 전시장에 지인들과 방문하는 날에는 사진들을 무대 배경으로 삼아 잠시 배우가 되어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가 없는 날에는 사진들이 대신 무언과 부동의 연기를 펼친다. 물론 전시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다양한 대안 공간에서 전시할 때 작품들이 그저 배경으로 머무는 경우도 많다. 커피와 음식을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에게 내 작품들은 관심 밖이고, 그럴 때는 씁쓸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영화 <라라 랜드>에서 미아가 첫 1인극을 끝내고 낙담하던 마음과 비슷하달까.

    나에게 사진전은 기록을 공유하는 수단이다. 아무렇게는 아니고, 공간들의 고유한 색이나 이야기에 맞추어 나의 기록을 섞는 작업이다. 그 무렵 창작자 동료 프랭코 님의 <HOMEMADE> 전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도집'이라는 따뜻하고 정갈한 숙소에서 한정된 인원(하루 1타임, 4명 한정)들만 유료로 참여할 수 있는 전시였다. 나는 5월 21일 토요일 오후 1시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부산 전포 시도집의 정원HOMEMADE 전시를 안내하는 프랭코


    지도를 보며 찾아간 전포동 시도집은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나 적막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열린 대문으로 살짝 보이는 작은 정원에는 유월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4명이 모두 모이자 프랭코 님의 안내가 이어졌다. 노트 두 권이 담겨 있는 선물 봉투를 들고 이 독특한 전시에 첫 발을 내디뎠다.

HOMEMADE 전시 책자HOMEMADE 전시 풍경



    거실, 다이닝룸, 방, 다락방 등등 다양한 숙소 공간에는 5년 동안 프랭코 님이 방 안에서 만든 것들과 소중히 수집된 책들과 다른 동료들의 창작물들, 최근에 시작하신 유튜브 채널 <Late Night Desk> 영상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충분한 시간 동안 이 방 저 방 자유롭게 오고 가며 프랭코 님의 기록 유물(!)들, 수집물들을 탐험했다.

프랭코 님의 기록도구들프랭코 님의 기록도구들
프랭코와 문구점 응그림책이 있던 방



    이번 전시에서 가장 우연적인 요소는 한날한시에 모인 4명의 창작자들이었다. 거실에 놓인 큰 책상에서 각자의 세계를 나누는 시간 덕분에 새로운 창작자 친구들도 짧은 시간 동안 깊이 알게 되었다. 서로의 기록물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창작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나는 이날 부산에서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업물 <청춘의 체계> 원본 노트를 가져왔다. 일기에서 시작된 고민을 콜라주로 작업한 글을 6년 뒤에 낭독하는 기분이 무척 오묘했다.

청춘의 체계 원본 노트와 자이언트 북진주 골목길아트페스티발에서의 자이언트 북 전시
해체 전시 준비중
&amp;lt;청춘의 체계&amp;gt; 해체 전시-1/ 진주 다원&amp;lt;청춘의 체계&amp;gt; 해체 전시-2/ 진주 다원



    잠시 <청춘의 체계>에 대해 설명하자면, 미숙하고 체계 없는 자신에 대해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았던 그 시절의 고민과 연구를 치열한 콜라주로 표현한 작업이다. 2016년 9월 진주 골목길아트페스티발에서 A1 사이즈의 거대한 책으로 변신해 진주교육지원청 앞에 전시되었다가 12월에는 자이언트 북 해체 전시로 내가 아끼는 '다원'의 벽 일부를 가득 채웠던 작업이다. 이 노트는 곧 창작물로 다시 작업해볼 예정이다.

프랭코 Late Night Desk
프랭코 님에게 영감이 된 영화 &lt;패터슨&gt;
프랭코 님 전시 속 채린제인 작업물



    <HOMEMADE>는 프랭코 님의 철학이 그대로 구현된 전시였고, 참여자들의 창작 시간이 결합된, 참으로 '프랭코스러운' 전시 워크숍이었다. 시간과 형태, 한계를 초월한 프랭코 님의 기획과 실행력에 이번에도 감탄과 더불어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토록 특별한 공간 속에서 프랭코 님이 수집한 나의 책과 포스터북을 보는 감동까지 더해졌다. 다락방에 다른 분들의 창작물 곁에 놓인 저의 작업물을 보고 '고생스러웠어도 그때 책 쓰길 참 잘했다, 전시도 최선을 다해 보기를 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이 모든 걸 계속해야겠다는 확신도 함께. 거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음악'에 대해 자연스럽게 오고 갔던 다양한 대화들을 소중히 여겨준 마음도 책자에서 모두 느낄 수 있어 더욱 기뻤다.

    며칠 전, <HOMEMADE>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창작물이 엮인 책이 도착했다. 우리가 경험한 시간을 손으로 만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영감을 나눈 다른 창작자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프랭코 님이 기록해주신 사진과 그날 전시에서 만난 승수 님의 글에 등장한 <사적인 파라다이스> 이야기도 만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이리저리 펼쳐놓은 날 것의 창작들을 <결과물>로 내놓기 위해서는 '정리와 분류'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프랭코 님도 전시를 통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와 분류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기록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일상의 하찮고 자그마한 기록들이 요긴하게 필요할 때, 그걸 기록했던 과거의 나에게 너무나 고마울 때가 있다. 일분일초마다 휘발되는 시간 속에서 슬픔이 묻은 기록도, 불안했던 순간의 기록도, 짙은 행복이 넘실대던 기록도, 공허한 기록마저도 진공 안에서 낙하하는 깃털과 쇠공처럼 그 비중이 비슷해진다.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고, 모든 재료는 자유로이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

    <HOMEMADE>는 작은 인연과 영감을 소중히 여기는 프랭코 님의 행성 안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창작자들이 다녀간 임시 정거장이었다. 모든 이가 창작자가 되고, 우리의 시간은 다양한 기록의 형태로 남겨질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 읽고 쓰고 만드는 시간들은 적막한 자기 신뢰의 연속이겠지만, 이날의 응원과 온기를 기억하며 오늘도 하품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기록과 수집에 한 글자라도 더해본다.

    끝으로 전시회 후기에 썼던 저의 말을 이곳에 옮기며 마무리한다. "작은 영감도 놓치지 않고 박박 긁어모으는 프랭코 님.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 언젠가 사고(?)를 칠 줄 알았습니다. 좋은 영감으로 범람하여 기뻤던 토요일의 한낮이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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