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린제인(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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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 어른이 되어 맞이하는 첫 가족여행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집단이 있다.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그와 유사한 그룹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작은 세계를 이룬다. 그리고 개인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피와 시간을 나눈 사람들은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역할과 상호 간 약속을 정한다. 각자의 습관에 물들기도 하고, 불편한 점들이 있다면 드러내기도 하면서 우리는 사회를 경험하고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간다. 운이 좋다면 가족 구성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연장되어 가족의 울타리에서 세상 바깥으로 자신의 영역을 무사히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등과 타협(혹은 비타협)의 터널을 지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본..
2022.10.19 -
[전시] 기록을 경험하는 공간, 프랭코의 <HOMEMADE>
요즘 남천동 타코들며쎄쎄쎄에서 사진전을 하고 있다. 5월부터 7월까지 넉넉한 기간으로 열린다. 덕분에 전시에 오시는 손님들도 급하지 않게 본인의 스케줄에 맞추어 한 번에 한 분씩 차분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일은 컨디션 관리. '체력과 기분이 무너지지 않게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진행했다. 그래서 4월에는 몸과 정신의 상태를 살피며 살얼음을 걷듯 할 일들을 해나갔다. 전시가 시작되었고 이제야 미뤄둔 피로가 한 움큼 밀려오고 있지만,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후련하다. "돈 쓰고, 시간 쓰고, 피곤해서 아프고, 액자 때문에 짐만 늘고, 이리저리 손해만 보는 사진전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손목 통증, 발목 통증, 최근에는 다래끼 초기 증상까..
2022.06.26 -
[전시] <My Cherish, Cheerful Companion> 사진전 / 부산 남천 타코들며쎄쎄쎄(쎄쎄쎄 명랑커뮤니티센터)
안녕하세요, 평온을 수집하는 기록자 채린제인입니다. 작년 브루커피 해운대점에서 열린 사진전에 이어 올해는 5/1(일)부터 7/10(일)까지 부산 남천동 타코들며쎄쎄쎄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은 공간 이름의 앞 글자(CCC)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소중하고 유쾌한 친구'는 반려동물을 의미합니다. 쎄쎄쎄에 동물 친구들이 많이 놀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받아 준비한 전시입니다. 저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뉴질랜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반려동물을 만나고 목격했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범주를 넘어 대자연 속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1년간의 여행에서 만 여장의 평온을 수집했습니다. 그중 반려동물이 등장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느낄 수..
2022.05.01 -
일과 노동에서 평온을 찾는 '인생 편집(Life-Editing)'
2022년 2월 21일 저녁, 올해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중요한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거든요. 커다란 일 몇 개를 앞두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날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이 작업들은 모두 설 연휴 때 하려고 다짐했던 것이었지만(1월 29일의 기록) 연휴 다음 날인 2월 3일의 일기를 보면 저는 '눈이 몹시 피로한 채로 잠이 들어 꿈에서도 할 일에 쫓기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 후 20일의 추가 시간을 쪼개어 중간에 5편의 노래 번역 작업도 완성하며 결국 1-2월의 주요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일은 미리 챙겨둔 연차를 쓰는 날이네요! 이번에는 연말정산 환급금도 함께 들어온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넉넉한 2월입니다. 분명 작년 가을에 「내년에는 안식년을 갖겠다..
2022.02.24 -
[앵글매거진/Angle Magazine] "The Meditative Photos of Chaelinjane" by Hannah Polinski
부산 해운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시점에 앵글 매거진(Angle Magazien)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13년에 론칭된 앵글 매거진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외국인 독립 예술가들을 다루는 집단입니다. 오래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아오던 Philips Brett의 제안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사진에 대한 전문 비평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앵글 매거진에 실린 영어 원문과 제가 번역한 한국어 버전을 아래에 준비했습니다. 저에게 사진은 '기록과 자기 치유'를 위한 작업으로 상업 사진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사진이 저에게 치유를 준 것처럼, 저의 사진도 누군가에게 평온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토록 이기적인 제 사진을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는 시선에 그저 감사할 따..
2022.02.07 -
[전시 후기] <사적인 파라다이스(2021)> 사진전 / 해운대 브루커피
한 줌의 평온 밤새 바다를 표류한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가 절실하듯 태양빛에 오랫동안 데워진 모래 속으로 파고들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슬픔과 불안의 주위는 습도가 높고 서늘해서 이 감정 구간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 곳. 방전된 내가 기운을 회복하는 섬. 외부의 영향 없이 나의 의지로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낙원. 고대 사람들이 시나 연설을 암송하기 위해 기억의 궁전(Mind Palace)을 이용하는 것처럼 나는 내부에 추상적인 섬을 만들어 평온을 얻기 위한 재료들을 모아두기로 했다. 그래서 일상과 여행지에서 조금씩 떼어낸 평온한 순간을 뭉쳐 자그마한 섬을 조성했다. 그 섬에는 좋아하는 음악이 종일 나오고 보고 싶은 영화 장면이 반복되며 ..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