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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렉트로닉, 생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2)
자정이 넘은 캄캄한 밤, 도쿄에서 열린 MUTEK 금요일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적인 앰비언트로 시작해 숨 막히는 하드코어 테크노까지, 일렉트로닉 세계를 다양하게 여행한 밤이었다. 낯설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던 공연은 12월의 얼어붙은 밤공기를 뜨겁게 녹여냈다. 5시간가량 이어진 스탠딩에 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연료를 태운 열기구처럼 자꾸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두꺼운 외투를 벗자 어깨와 목덜미에 갇혀 있던 뜨거운 공기가 공중으로 날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언덕,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는 소년 무리를 마주쳤다. 밤을 긁는 날카롭고 거친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늦은 밤 시간을 한낮처럼 쓰며 넘어지고, 엎어지고, 어디 하나 크게 부러질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소년들..
2023.04.16 -
필수 체크리스트! 전월세집, 구하기 전에 ◦◦◦◦부터 명확히
학업, 취업,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한다. 앞으로 살아갈 동네와 집을 아주 신중하게 선택한다.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집을 구하고 당일날 이사까지 마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요! 빠른 속도로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간단한 방법을 시험해 본 날이었다. (물론 그때를 생각하면... 피로감이 무진장 몰려오지만.) 세상 일은 어쩌면 그렇게까지 오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빠른 결정 뒤에 후회도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번갯불처럼 집을 구해야 했을까? 2월 17일 귀국, 2월 27일 이사, 그리고 3월 3일 첫 출근. 꽤 촉박한 일정이었다. 이사 갈 집은 친한 언니가 살던 곳. 새로운 동료들을..
2023.04.15 -
성격에 맞는 직업, 과연 존재하는 걸까?
12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끝으로 부산에서의 직장 생활을 마쳤다. "미쳤네! 퇴사 기분 제대로 만끽하는구나?" 폭풍 같은 업무 이후 단 하루 쉬고 새벽부터 출국. 내가 봐도 아주 떠나고 싶어 환장한 사람 같다. (실상은 저렴한 티켓을 구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지만!) 밀라노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2023년의 첫날을 맞이했다. 휴가와 일이 섞인 '워케이션(Workation)'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한 달 반 가량 지낼 계획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기록자로서 또 다른 일을 시작하는 3월이 되기 전, 그동안 무진 애써 왔던 나에게 특별한 작업 환경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이전 직장에서 얻은 것 새벽부터 한낮까지 정신없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비행기에서 숨을 고르고 있으니 그동안 후루룩 지나갔던 시간들이 떠오른..
2023.03.26 -
[공연] 일렉트로닉, 감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1)
시간은 평평한 모래사장이다. 어느 한 곳에 빈 구덩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모래를 쌓아 올려야 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모래 알갱이와 바닷물이 뒤섞여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모든 것이 덮인 표면, 뒤돌아보면 시간은 그런 식으로 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도쿄에서 보내는 나흘 간의 가벼운 시간을 위해 다른 날들을 묵직하게 보냈다. 금요일 오전 8시에 떠나는 비행기라 전날 퇴근 후 마감 작업을 정리하고 짐을 다 챙기고 나니 새벽 2시. 세 시간 후에 다시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고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서 기절해 잠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고 피곤하게 일본행을 강행한 이유가 있다. 12월이 될 때까지 휴가를 잘 참아왔고, 단순한 휴가가 아닌 독특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이 시간을 쓰고 싶다..
2023.03.09 -
[공연] 도쿄에서 만나는 아방가르드 일렉트로닉 음악・디지털 예술 축제 <2022 MUTEK Tokyo>
가랑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친한 언니와 함께 분무기 같은 가벼운 비를 맞으며 데크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하늘에 흩어진 빗물이 희뿌연 장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간단한 술과 안주로 저녁을 먹고 있던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입고 있던 재킷은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졌다. 선실 안에 있던 타올로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사람처럼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아주 서서히,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가 나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봄밤의 가랑비처럼 내가 서서히 스며든 세계가 있다. 종이와 아날로그, 오래된 것들을 사랑하는 성질이 별안간 이라는 기계의 중심부로 향한 것이다. 경멸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지독한 편견으로 인..
2022.12.06 -
[경주/여행] 실패 없는 경주 가족여행지 (2) - 동궁과 월지 : 보름달이 뜬 밤, 우리는 오랜 정원을 거닙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중에서도 '자연'은 인간이 태초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예술의 원형이 된다. 무언가에 감탄을 했다면 곧 그것들을 곁에 두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른다. 사람은 물론, 유명 작가의 작품부터 아름답게 자라난 초목, 깊은 산 중에 만났던 동물까지도. 온 가족이 한국에서 오랜만에 맞이하는 추석날 밤, 100년 만에 가장 크고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놓치기에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소중하다. 수많은 인파를 예상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경주다운 곳에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자는 제안에 가족 모두가 찬성했다. 목적지는 경주 야경 명소로 유명한 .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고 공평하게 무작위 재생을 하며 야간 드라이브를 나섰다. 경주 하동 공..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