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실패 없는 경주 가족여행지 (2) - 동궁과 월지 : 보름달이 뜬 밤, 우리는 오랜 정원을 거닙니다

2022. 12. 4. 15:3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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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중에서도 '자연'은 인간이 태초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예술의 원형이 된다. 무언가에 감탄을 했다면 곧 그것들을 곁에 두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른다. 사람은 물론, 유명 작가의 작품부터 아름답게 자라난 초목, 깊은 산 중에 만났던 동물까지도.

    온 가족이 한국에서 오랜만에 맞이하는 추석날 밤, 100년 만에 가장 크고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놓치기에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소중하다. 수많은 인파를 예상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경주다운 곳에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자는 제안에 가족 모두가 찬성했다. 목적지는 경주 야경 명소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고 공평하게 무작위 재생을 하며 야간 드라이브를 나섰다. 경주 하동 공예촌 숙소에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이 날은 보름달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주차할 때까지 30분 정도 더 걸렸다.


동궁과 월지

- 주소 :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 운영 시간 : 매일 오전 9시 ~ 오후 10시(30분 전 입장 마감)
- 네이버 예약 시 페이 포인트 1% 적립 가능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신라시대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조금씩 완성해나가기 시작한 674년, 경주 월성의 동쪽에 호수 월지를 만들고 5년 뒤 같은 위치에 동궁을 별궁으로 지었다. 연못 안에 3개의 인공섬을 조성하고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어 이곳에 각종 진귀한 동・식물을 풀어놓았다고 전해진다. 후대에 호수 속을 조사했을 때 소, 말, 돼지, 개, 노루, 산양, 사슴, 멧돼지, 꿩, 오리, 닭, 거위, 기러기 등의 뼈가 출토되었다고 하니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불릴만하다.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보다 우리는 '안압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신라 멸망 후 조선시대까지 폐허로 남아 있던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池)이라고 해서 '안압지'로 불렀다는 기록이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 등에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80년에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2011년에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안압지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는 막연한 쓸쓸함은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 안에서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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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 가족과 연인들이 인증 사진을 찍어주느라 분주하다. 나는 오래된 필름 렌즈로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여러 번 숨을 참아냈다. 걷는 내내 연못에 담긴 달빛을 바라보며 처음 이곳에 '월지'라는 이름을 붙인 이를 떠올렸다. 인공섬에서 들려오는 낯선 동물의 울음소리가 달빛과 함께 흔들리는 밤, 그는 이곳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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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밤하늘 아래, 조명을 더한 월지 5호 전각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원래는 서까래나 난간 끝에 금동으로 된 장식 마개 등이 달려 있었다고 기록되는데, 복원된 모습은 사치를 경계한 조선시대 건축처럼 단아하고 소박하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금동 장식도 함께 재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동궁과 월지를 밝히는 금빛 조명들이 본래의 화려함을 채워주는 듯하다.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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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이 수면 위에 비친 덕분에 아름다운 세계가 더욱 신비로워진다. 천천히 사진을 찍느라 부모님을 먼저 보낸 나는 음악을 들으며 밤 산책을 즐겼다. 야외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많으면 목소리가 커지기 쉽고,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커다란 소음과 스트레스가 된다. 이럴 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이 큰 역할을 해낸다. 이 세상은 편집되지 않은 원본 그 자체이기 때문에 특별한 순간이 되어도 충분히 즐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별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낙원을 최대한 지켜낼 수밖에. 듣고 싶지 않은 남의 집안 이야기들, 지인 이야기들이 수두룩하게 난무하는 이 밤의 정원에서 나의 이어폰은 충실하게 타인의 단어를 튕겨내었다. 대신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정취를 더했다.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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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 건너편에 켜진 조명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보름달을 보며 <바라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기도한다. 이십 대부터 아주 오랫동안 이 기도 문장은 변한 적이 없다. 이번 추석이 나에게는 독립의 서막이 되었다. 결심을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어머니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지만. 새해를 한 달 앞둔 지금, 결국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원하던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 구름에 숨은 달빛이 모습을 드러내듯,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가야 할 길이 선명히 나타났다. '한번 가봐라. 더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머니는 딸에게 보내는 응원을 따끔한 충고로 대신한다. 그렇기에 내가 얻은 기회와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다운 결정을 할 때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주변은 파장으로 크게 흔들리지만, 결국 파문은 잠잠해지고 각자의 심리적 세계는 확장된다. 가족 여행이라는 특별한 시간이 때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동궁과 월지, 문무왕의 사적인 파라다이스에서 보내는 한밤의 아름다운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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