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제주 여행, 메르세데스-벤츠 C200 카브리올레

2021. 11. 24. 22:2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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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2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120분이면 꽤 넉넉한 영화의 러닝 타임이고, 식사와 커피 타임을 즐길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그리 길지 않은 여행 일정에서 2시간이 뒤로 밀리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오픈카를 빌렸는데 출발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날짜에 흐린 날씨가 예보되어 있고, 식물원 등 야외 테마시설이 한 시간 일찍 문을 닫는 동절기의 여행이라면 더더욱이요. 묵주기도로 화가 나는 마음을 겨우 달래고 있던 엄마는 '다시는 진 에어를 타지 않겠다' 선언하셨습니다. 우리 둘 다 모처럼의 여행을 출발 지연 때문에 기분까지 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했지요. 그래서 지연된 시간을 잘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중간중간 따스한 햇살이 드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현실 자각에 초조함이 일었습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렌터카 업체의 셔틀버스도 타지 않고 곧장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셔틀버스 시간을 맞추는 것조차 아까운 마음이었지요. 오전 11시 30분에 예약한 렌터카는 오후 1시 20분이 되어서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항공사 측의 보상도, 업체 측의 배려는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자잘한 상황들은 일단 여행자가 부담하는 수밖에요. 이래서 인생과 여행은 닮아 있나 봅니다. 아무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아요.


라이프 스타일을 시험하기 위한 여행


10월에 휴가를 계획하면서 항공편을 예매한 뒤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이 렌터카였습니다. 카메라와 렌즈, 책, 다이어리, 필통, 아이패드(심지어 타자기 키보드까지…!) 등 엄청난 짐을 가지고 다니며 ‘당나귀’라는 별명 값을 하고 있는 저는 일상에서도 탈 것이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자동차는 어디든 멀리 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고 완벽한 음악 감상실이자 사적인 공간의 역할을 해내니까요. 국내 여행지에서 근사한 숙소에 머물며 먹고 마시고 다니는 것보다 낯설고 궁금한 차를 경험하는 것에 더욱 큰 만족을 느낀다는 걸 알고 나서는 여행 예산의 가장 큰 금액을 기꺼이 차량 렌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지붕을 개방하는 것은 안전을 한 꺼풀 벗는 대신 하늘을 얻는 일입니다. 일상의 경계에서 묵직한 짐을 가지고 최대한의 해방을 허락하는 방편이 됩니다. 마치 땅 위에서 작은 배를 타는 것처럼 햇살과 바람을 피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평소에도 창문을 모두 열고 운전해야 편안함을 느낍니다. 자동차와 운전, 이동하는 삶을 사랑하는 나는 앞으로 컨버터블 차량 운용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유형의 차가 나의 생활 유형에 맞는지 제주 여행을 기회 삼아 여러 브랜드의 차량을 시험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Mercedes-Benz C200 Cabriolet ⓒ2021.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이번 여행은 메르세데스 벤츠 C200 카브리올레와 함께 합니다. 지난 번 여행 때는 머스탱 컨버터블 에코부스트 모델을 빌렸는데,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이기도 해서 취향보다는 편의성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원래 E220 카브리올레를 먼저 봐 두었지만, 일정에 맞는 항공편을 찾는 동안 리스트에서 사라져 대안으로 C200 카브리올레를 선택했습니다. 겨울이지만 웬만하면 오픈 에어링 상태를 유지할 거라 목 뒤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벤츠의 ‘에어스카프’ 기능이 상당히 유용할 것 같았거든요. 렌터카 업체는 제주 현지 업체인 ‘특별한렌트카’로 선정했습니다. 지난번에 보고타렌트카에서 흰색 머스탱 컨버터블을 빌렸을 때 마치 백마를 타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 C200 카브리올레도 흰색으로 배정받았습니다. 마침 시트 색상도 라이트 브라운이라 제주의 자연스러운 색감과 한결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제주] 주식회사 특별한렌트카 C200 카브리올레, 휘발유, 4인승

▲ 제주 특별한렌트카에서 벤츠 C200 카브리올레 가격 확인하기


11월 20일 토요일부터 11월 23일 화요일까지, 3박 4일 여행 동안 시속 80km 도로들을 제외하고는 기꺼이 오픈 에어링을 맛보았습니다. 거짓말 안 하고 제주 일기 예보를 출발 3주 전부터 아침 점심 저녁마다 확인했습니다. 4일 중 3일에 구름과 비 모양이 찍혀 있었는데 최대한 비가 오지 않기를 매일 기도했어요. 가톨릭의 엄숙함과 금욕주의로 평생을 살아오신 엄마에게 저와 함께 하는 여행 동안 이전에 없던 해방감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속이 뚫리는 다양한 자유를 경험해봐야 겁 많은 엄마가 경직된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것 같아서요. 아래에 자동차와 렌트 후기에 대하 간단한 글을 남겼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은 여행기 중에 함께 담았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여행지에서 운명의 책 만나기 - 제주 섬타임즈

여행 짐을 챙기면서 읽고 있던 책을 집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낯선 공간에서 다양한 책들을 구경하다가 마침내 가장 끌리는 책을 고르는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기하

www.privateparadise.org

 

한적한 일요일 오전의 드라이브, 제주에서 미사 보기(성 이시돌 센터 삼위일체 대성당)

낯선 기운에 잠이 깼다. 엄마가 좋아하는 온돌방을 예약한 덕분에 온 몸을 따뜻하게 지지며 피로를 풀었다. 아침은 꼭 먹어야 하는 엄마와 호텔 조식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조식은 크게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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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후기

 

1 - 작은 캐리어는 트렁크에 싣고 부피가 큰 캐리어는 지붕을 열고 뒷좌석에 실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시트 훼손으로 문제가 생길까봐 미리 업체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모든 고객들이 보통 뒷자리에 짐을 싣는다며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배정받은 차는 내외부에 어느 정도 사용감이 있는 상태였지만 청결한 상태로 출고되었습니다. 변속기가 핸들 뒤에 달린 칼럼식 레버는 의외로 적응하기 쉬웠고, 주차할 때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기어를 조작할 수 있어 훨씬 편했습니다. 다만 운전할 때 왼손이 닿는 곳에 '속도 제한' 버튼이 쉽게 눌러져서 주의가 필요했다. 애플 카플레이가 연결된 상태에서는 카카오 맵이 실행되지 않아 블루투스를 연결해 음악은 제 아이폰으로, 내비게이션은 엄마의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이용했습니다.

2 - 이미 많이 늦어버린 점심을 먹으러 애월 하귀에 문동일 셰프가 운영하는 녹차고을로 향하면서 차의 주행 성능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노면이 고르지 못한 곳에서는 차체가 좀 심하게 흔들렸고 내부에서도 바닥의 울퉁불퉁함이 거의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엄마가 '차 어디 부딪힌 거 아니야?'라고 놀랄 정도였지만 차 전체를 잡아주는 지붕이 없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3 - 소프트탑이 소음이 심하고 보온에 취약하다고 해서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잠깐 우박이 쏟아질 만큼 갑작스레 추워지고 굉장한 강풍이 불어서 보온 기능을 짧게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웬걸요. 좌석의 온열 시트와 히터, 에어스카프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습니다. 음악을 크게 듣는 편이라 주행 중 소음의 불편함도 거의 없었습니다.

4 - 오디오를 처음 재생했을 때 중고음부가 너무 날카롭고 고르지 못하게 표현되어 조금 불편했습니다. 원래 중저음 사운드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퀼라이저 설정에서 중간 톤을 3 스탑 정도 낮추고 차라리 볼륨을 높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5 -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과 비교했을 때 운전의 편의성에서는 벤츠가 훨씬 우세했습니다. 운전의 강도가 지난 번과 비슷했으나 피로감은 상당히 덜했거든요. 허벅지 아래까지 섬세하게 몸의 모양에 따라 시트를 맞출 수 있고 핸들을 움직이는 범위가 적어도 바퀴가 원하는 각도만큼 충분히 돌아가서 운전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주행 중에도 50km/h 이하의 속력에서도 버튼 하나로 소프트탑을 열고 닫을 수 있어 더 안전하고 편했습니다. (머스탱 컨버터블은 소프트탑 개폐 버튼을 누르기 전후, 잠금 레버를 손으로 직접 조작해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6 - 모 유튜브의 오픈카 비교 영상에 C200 카브리올레에 탑승한 사람의 머리카락이 상당히 많이 날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운전하기 편하게 다리를 뻗은 자세에서(본인의 키는 171cm) 소프트탑 개방 후에는 창문을 모두 올리고 바람을 추가적으로 막아주는 에어캡을 올렸습니다. 머리를 풀고 있을 때는 뒤에서 치는 바람 때문에 긴 옆머리가 자주 앞으로 넘어와서 귀 뒤로 중간중간 넘겨줘야했습니다. 첫날 빼고는 두꺼운 외투 때문에 머리를 묶고 다녀서 그런지 운전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7 - 오픈카는 완전 자차 보험이 불가능합니다. 일반 자차로 보통 400만원까지는 보상을 받아도 그 이상의 금액은 본인이 물어야 하고 휴차료가 발생하면 굉장한 돈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본인이 평소 안전 운전과 방어 운전에 충실하다면 제주도에서 사고를 낼 확률은 적습니다. 그렇지만 제주도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와서 차를 빌려 여행을 하는 곳이니 무언가 찝찝하고 걱정이 된다면 완전 자차가 되는 다른 차를 렌트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종합 - 개인적으로 동급 내에서 머스탱 감성은 희소성까지 배가 되어 원탑이지만, 장거리 장시간 운전의 편리함과 이용자를 배려하는 기능들, 연비면에서는 C200 카브리올레가 훨씬 나았습니다. 자동차에 MBTI가 있다면 꼭 INFP 같았던 차였다. 내성적이지만 필요한 순간에 박차고 나아갈 줄 알고, 감정기복(=외부 상황에 따른 소음과 충격)이 심하지만 운전자에 대한 이해심이 많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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