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실패 없는 경주 가족여행지 (1) - 스테레오의 낙원, 한국대중음악박물관

2022. 11. 13. 21:0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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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취향들은 유전자를 타고 내려온다. 특정한 분야에 유난히 끌릴 수 있는 마음은 내 몸과 함께 이미 생성되어 있는 것이다. 적절한 환경과 우연한 기회를 만나면서 개인의 취향은 보다 다양하고 깊어진다. 내게도 그렇게 형성된 것들이 있습니다. 사진, 다이어리, 음악, 그리고 풀. 글쓰기와 사진은 스스로 기른 취향에 가깝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풀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전해져 온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듣는 시간>이 특별한 기억 덩어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떠오르는 장면은 수 십 권 쌓여 있던 <스테레오 사운드> 잡지들. 음악과 음향은 아버지가 가장 큰 애착을 가진 분야이자 딸과 소통하는 멋진 수단이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내뿜는 열정이 어린 마음에도 그대로 느껴져서 '음악은 그 자체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매체'로 자연스레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나, 우리 둘의 취향에 특화된 장소가 어디일까 고민하다가 경주 민속공예촌 숙소에 도착하기 전 흥미로운 장소 한 곳을 먼저 둘러보았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K-Pop Museum)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엑스포로9(신평동 220-6)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입장마감 오후 5시)
- 정기휴관일 : 매주 월/화(해당 요일이 법정휴무일일 경우 정상 개관)
-
네이버 페이 예매 시 할인(2022. 12. 31까지)
- 입장료 및 할인 정보(홈페이지 링크)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1층 CAFE 랩소디인블루 /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2015년에 개관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한국 대중음악과 OST 영화음악의 역사를 훑어보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1층에는 공연홀을 겸한 카페 랩소디인블루가 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관, 한민족 최초 소리관 등 여러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BTS 멤버가 다녀간 이후로 팬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기증해 특별전시가 마련된 공간도 있어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젊은 친구들에게는 신기한 발견을 선사한다.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곳은 3층에 있는 <소리예술과학 100년사관>. 에디슨의 최초 발명 이후 시대별로 축음기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는 <에디슨 소리과학관> 코너도 중간에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이곳에서는 웨스턴 일렉트릭 시스템, JBL, 탄노이, 알텍 등 역사적인 스피커와 앰프를 직접 볼 수 있다. 걸음마다 등장하는 전설적인 스피커들을 보며 아버지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한다. 평생을 간절히 그리며 잡지나 영상 속에서만 만나왔던 것들인데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스피커인 탄노이 프로페셔널 오토그래프가 고요히 그 자태를 뿜어낸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손을 흔들며 연신 감탄을 쏟아내신다. 아까부터 노랫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지금 나오는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인류 최초의 스피커로 듣다

 

웨스트 일렉트릭 미로포닉 시스템(부분) / (c)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소리예술과학 100년사관의 하이라이트, 음악감상실이다. 미국의 통신 기기 제조회사 '웨스트 일렉트릭'에서 유성영화 상영을 위해 1926년에 처음 개발한 극장용 음향 시스템 "미로포닉(Mirrophonic) 시스템"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리시버(신호를 수신해 스피커에 소리를 전달하는 장치) WE555가 결합된 12a혼(고음역대), 13a혼(저음역대) 앞에 서서 눈으로 한 번에 담기도 힘든 이 스피커를 훑어본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거대한 텔레포트처럼 느껴진다. 혼 내부에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부분은 4m에 달하는데, 나무를 이런 모양으로 제작하기가 매우 까다로워 그 당시 매우 적게 생산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개수도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전설적인 스피커로 얼른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고 싶어 온몸이 간질간질하다. 저의 욕망은 잠시 내려두고, 아버지가 요즘 다시 듣고 있는 퀸의 <The Show Must Go On>을 제일 먼저 신청했다.

<노래 신청 방법>
한국대중음악박물관 네이버 톡톡으로 "가수 / 곡명" 보내기
'다음 곡으로 들려드립니다' 등의 메시지를 받으면 접수 완료!


    일반 스피커로 들어도 꽉 차는 퀸의 음악을 최초의 미로포닉 사운드로 들으니 소름이 돋는다. 감상도 좋지만 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나의 신청곡을 정해야겠죠. 정말 무수한 곡들이 머리를 스쳐갔는데, 아무래도 '단 한 곡'을 꼽으라면 제 인생을 바꾸었던 음악을 들어보는 게 정답인 것 같다. Earth, Wind and Fire의 <September>가 흘러나오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아서 춤을 추며 들을 수 있었다. (히히) 어머니가 마스크 호흡 불편 때문에 먼저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어서 딱 두 곡만 듣고 박물관을 나섰다. 여기 하루 종일 있어도 너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역시, 음악에 푹 빠진 유전자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아버지가 꿈에 그리던 스피커들을 실제로 보고, 인류 최초 스피커의 오리지널 사운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진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명하지 않아도 독보적인 포근함을 가진 진공관 앰프. 소리예술과학 100년사관 감상실에서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한 곡씩 신청해 역사적인 사운드로 경험해 보자. 부모님 세대가 좋아하는 클래식이나 7080 음악, 올드팝부터 동생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까지, 그 어떤 음악이든 짜릿한 시간이 될 것이다. 경주 여행 중 음악과 함께 하는 귀한 추억을 나누고 싶다면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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