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카페] 후글렌(Fuglen), 커피를 물고 일본으로 날아든 노르웨이 새

2023. 4. 28. 00:3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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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야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햇볕이 들지 않는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한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5시간 스탠딩 공연을 만끽한 MUTEK TOKYO의 여파가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이번 도쿄 여행의 목적은 MUTEK을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낮 시간은 도쿄 그 자체를 즐기는 데 쓰기로 했다.

▼ MUTEK TOKYO 2022 후기 다시 읽기!

 

[공연] 일렉트로닉, 감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1)

시간은 평평한 모래사장입니다. 어느 한 곳에 빈 구덩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모래를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모래 알갱이와 바닷물이 뒤섞여 다시 원래 상태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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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렉트로닉, 생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2)

자정이 넘은 캄캄한 밤, 도쿄에서 열린 MUTEK 금요일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적인 앰비언트로 시작해 숨 막히는 하드코어 테크노까지, 일렉트로닉 세계를 다양하게 여행한 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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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터를 틀어 마른 공기를 찬 공기에 섞고 부족한 잠을 조금 더 채웠다. 오전 10시. 아담한 욕조에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펼쳐둔 캐리어를 바라본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지? 집으로 다시 돌아올까, 아니면 이대로 나가서 밤까지 모험을 시작해야 하나. 코로나 이후 타지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낯선 감각이 참 그리웠다. 그래, 밤까지 쭉 있다가 돌아오자. 니트와 니트조끼, 가벼운 패딩을 걸치고 오래된 철문을 연다. 햇살이 반짝이는 아침이다.

 

 

 

    낯선 곳에 가면 꼭 근처 동네 카페에서 몸을 깨운다. 새로운 풍경을 가득 담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일상을 낯설게 만들고 싶은 어느 때든 이 감각이 통할 수 있도록 평소에는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신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도쿄에서 아침 카페는 당연히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걷기 적당한 거리 안에 있는 카페를 찾아 아침을 보내기로 했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주택가가 더욱 한적하다. 12월 초의 도쿄는 여전히 가을 풍경이 짙다. 가고 싶은 카페까지 가는 길은 골목길을 쭉 따라 가면 될 정도로 너무 쉬웠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길을 따라 조금 둘러 가기로 한다.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을 즐기는 할머니, 주말을 맞이하는 거리의 상점들. 바쁜 일주일을 보내다가 낯선 도시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연인까지 곁에 있는 지금, 영원 같은 다정함을 만끽한다.  

    걷다 보니 골목이 끝나는 즈음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한산하던 풍경 가운데 이곳만 북적북적. 주말 아침이라 여행객에 동네 사람들까지 가득이다. 좋은 커피 한 잔은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어놓게 한다. 아침과 낮에는 커피, 밤에는 칵테일, 베이커리와 분위기까지 모두 휘어잡은 이 카페의 인기는 좀처럼 식지 않을 것 같다.

 

도쿄 시부야 카페 후글렌(Fuglen) 내부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Fuglen Tokyo(후글렌 시부야점)

1 Chome-16-11 Tomigaya, Shibuya City, Tokyo
운영 시간 : 7 am - 10pm / 1 am (인스타그램 참고

 

Fuglen Asakusa(후글렌 아사쿠사점)

2 Chome-6-15 Asakusa, Taito City, Tokyo
운영 시간 : 8 am - 10pm 

 

    후글렌(Fuglen). 노르웨이어로 '새'를 뜻하는 단어다. 금테를 두른 붉은 원 안에 노르웨이 오슬로 항구에서 볼 수 있는 '제비갈매기(Tern)'가 새겨진 로고가 강렬하다. 이 브랜드는 1963년 오슬로의 작은 카페에서 KAFFE FUGLE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노르웨이는 18세기에 시작된 브라질과의 무역으로 질 좋은 아라비카 원두를 공급받으며 스페셜 커피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커피 소비량뿐만 아니라 품질로도 지금까지 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행을 하는 새'로 알려진 제비갈매기처럼 후글렌은 2012년 도쿄로 날아와 시부야의 도미가야 거리에 둥지를 틀고, 2018년에는 아사쿠사까지 나아갔다. 에스프레소 바와 칵테일 바가 결합된 오리지널의 명맥을 그대로 이어가며 매장 곳곳에서 노르웨이의 빈티지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도쿄 시부야 카페 후글렌(Fuglen) 내부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커피를 주문하고 앉을자리를 찾았지만 실내에는 앉을 테이블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길거리에 서서 먹을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일어나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아침은 우유가 들어간 플랫 화이트가 제격!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풍미 넘치는 시간을 즐겼다. 빼곡하지만 소란스럽지 않게, 저마다 즐기는 아침의 모양들이 보기 좋았다.

 

도쿄 시부야 카페 후글렌(Fuglen)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도쿄를 떠나기 전날 밤, 아사쿠사 시내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비가 내리고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많이 걸어 피곤한 상태였지만, 숙소까지 한 시간가량 지하철을 타야 했다. 지친 우리 눈에 들어온 제비갈매기 한 마리! 그렇게 후글렌 아사쿠사점에서 커피로 힘을 얻고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이곳은 시부야점보다 공간이 조금 더 넓다. 밤에는 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밤거리가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얼어붙은 겨울밤을 녹였다.

 

 

후글렌 아사쿠사점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는 작은 카페들을 좋아한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는 토브 커피(Tob Coffee), 부산 해운대에는 까사부사노(Casa busano). 그리고 도쿄에서는 후글렌을 품고 간다. 언젠가 노르웨이 오슬로 본점을 방문할 기회가 찾아올까? 드문드문 손님이 찾아오는 이국의 아침 시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왕이면 도쿄 후글렌 두 곳을 같이 경험했던 이와 훗날 여행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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