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맛집∙기념품∙가볼곳] 시부야 산책 코스 추천! 여유로운 자연과 번화가를 동시에 즐기는 법

2023. 6. 18. 03:0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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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보다 겨울이 한 발 늦은 도쿄에서 미처 누리지 못한 가을 정취를 눈에 담는다. 일본에 서너 번 와 본 게 전부 봄과 여름뿐이라 도쿄의 늦가을-초겨울 풍경은 처음이다. 바쁜 틈새로 연말에 마련한 2022년의 휴가. 예전에 오랜 친구와 도쿄에 처음 왔었다. 그때는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방식으로 일본을 처음 만끽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친구가 결혼 소식을 들려줄 때쯤 나는 오래 만나던 사람과 각자의 길을 갔고, 주말에 근무하는 일을 할 때라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의 타이밍이 엇갈리다가 우리는 영영 먼 사이가 되었다. 친구와의 마지막 여행지가 되었던 도쿄. 그래서 그동안 도쿄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언가 저릿해졌다. 휑하니 사라진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나 지금 어디게!"
"도-쿄-! 나 방금 일어났어. 시부야역에는 언제 도착해?"

    씁쓸하게 끝난 우정이나 사랑에는 축복을 빌고, 아무쪼록 새로움과 설렘을 향해 나아가기로 한다. 인생의 묘미는 끊임없이 앞으로 향하는 데에 있으니까. 세 달 전부터 휴가로 일본 여행을 먼저 즐기고 있던 M을 시부야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나의 연인, 오랜만에 경험하는 도쿄. 벅찬 마음이 시부야역 앞의 번잡스러움에 뒤섞인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인파 사이로 저 멀리 연인의 얼굴이 쑤욱 나타난다. 나와 똑같은 브랜드 카메라를 목에 매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 3박 4일의 시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있어야 할 곳에 잘 와 있다는 기분이 든다.

 

발길 닿는대로, 자유롭게

    '살기 위한 여행'을 한번 하고 나면 삶의 온도가 달라진다. 수려한 계획보다는 일상을 닮은 우연을 찾게 된다. '멀리, 더 많이'를 외치는 욕심보다 '천천히, 더 깊게' 어떤 장소를 경험하고 싶어진다. 꼭 가고 싶은 몇몇 장소들만 기억해 두고 나머지는 우연과 직감에 맡기는 방식이 좀 더 편안한 이유다. 부산이나 서울이나, 마음 가는 대로 걷다가 '혹시 이 주변에 흥미로운 곳이 있을까? 없으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 빈틈 없이 계획을 열심히 따르는 건 일(work) 하나로 족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M의 여행 스타일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을 경험하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낮 시간에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시부야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혹시나 무작정 걸어보는 여행도 좋다면, 아래에 안내된 장소들을 지도에 넣어두고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반나절이라도 충분하다.

 

1. 탄탄멘과 트러플 차슈의 환상 조합, "우사기(Usagi)"

    어렸을 때부터 'Lo-fi' 음악을 좋아했다. 불안을 어떻게 소화해내야 할지 모르던 사춘기 시절, 테이프 노이즈나 잡음을 음악의 한 요소로 활용하는 로우파이 방식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말끔히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으로도 멋진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음에 안도했고, 편안히 반복되는 리듬 안에서 불안을 조금씩 이겨냈다. 재즈힙합 비트를 먼저 찾아 듣다가 나이가 들며 재즈를 기반으로 한 로우파이로, 더 나아가서는 음악의 모든 요소가 공중으로 흩어진 것 같은 앰비언트까지 사랑하게 되었다.

 

Nujabes - Aruarian Dance (Slowed & Reverb)

 

    서정적인 재즈 선율과 힙합을 결합시켜 일본 재즈힙합씬을 만들어낸 천재 비트메이커. 누자베스(Nujabes)의 "Aruarian Dance"(2004)를 처음 알게 된 후 한동안 깊은 황홀감에 휩싸였다. '좀 더 마음을 놓아도 괜찮아' 하며 예민하고 고민 많던 사춘기 소녀를 토닥이는 것 같았다. 절묘하게도 슬로우드 앤 리버브(slowed & reverb, 곡의 템포를 낮추고 울림 효과가 더해진)' 버전을 찾아냈다.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21화의 한 장면이 배경 영상으로 참 어울린다. 느려진 템포 덕분에 마치 어린 시절로 회귀한 듯하다. M은 독일에서 어렸을 때 본 <사무라이 참프루>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누자베스 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우리지만, 이런 접점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고 소중하다.

귀여운 우사기 간판과 내부에 걸려 있는 누자베스 작업실 사진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우사기 메뉴판(2022. 12)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시부야에는 누자베스의 동생이 운영하는 라멘집이 있다. 1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고 좁은 바 스타일 라멘집이다. 매장 안에는 누자베스의 음악이 끊임 없이 흘러나온다. 탄탄멘을 보통 맵기로 주문하고 밥과 면의 균형감이 궁금해 트러플 차슈도 주문했다. 고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접시 따로 추가해서 음식과 곁들여 먹기를. 고추기름과 탱글탱글한 면발, 고소한 국물 사이로 고수의 향이 치고 들어온다. 트러플을 고기 위에 조금 얹어 젓가락으로 밥과 함께 뜬 후 입 안에 넣으면 강렬한 아로마가 가득 퍼진다. 알맞게 요리된 교자로 입가심을 하면 어느새 싹싹 비워진 그릇을 마주한다.

 

탄탄멘, 트러플 챠슈, 교자 그리고 고수 추가!

 

    시부야에서 단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면 가야할 곳은?이라는 질문에 바로 '우사기'를 떠올릴 정도로, 이날 만난 음식은 오래 전의 도쿄 여행까지 모두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누자베스는 서른 여섯 생일날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전 세계 팬들에게 여전한 감동을 준다. 이제는 그 기억이 맛있는 요리와도 결합되었다. 누자베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우사기로 순간이동이 하고 싶어지는 마음! 다시 시부야로 가게 된다면 첫 식사는 무조건 우사기다. 마지막 한 입을 끝냈을 때 이미 그렇게 결정되어 버렸다.공지 및 소식은 트위터(https://twitter.com/ramen_usagi)로 확인할 수 있다.

 

 

2. 독립서점에서 디자인 산책 즐기기, "Shibuya Publishing & Booksellers (SPBS)"

 

    도쿄에서 활동하는 독립예술가들의 작업을 살펴보고 디자인 굿즈도 구매할 수 있는 시부야의 독립서점. 붉은 벽돌 건물에 넓은 통유리로 내부를 언뜻 볼 수 있어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은 쓱 둘러보게 된다.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분야를 중심으로 그 밖의 광범위한 장르를 품고 있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상태라도 책이 가진 물성의 아름다움에 홀린 듯이 페이지를 열어보게 된다.

 

 

    이곳에서 지류, 얇은 노트, 필기구 등을 넣는 nähe(내애) 투명 파우치(650엔)와 체코에서 온 Centropen사의 에르고라인 롤러(ergoline Roller) 4615F 0.3mm볼펜(190엔)을 구매했다. 이 볼펜으로는 2023년 다이어리의 날짜 부분과 헤드라인 기입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2주 동안 뚜껑을 닫지 않아도 잉크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초록색' 컬렉션에 추가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매일 사용하고 있어 활용도가 좋다. 이곳에 또 어떤 보물들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SPBS 온라인샵(https://spbs-honten.stores.jp/?all_items=true)에서 미리 슬쩍 구경해 봐도 즐거운 랜선 탐방이 될 것 같다.

 

3.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공정원, "요요기 공원(Yoyogi Park)"

    번잡한 도심을 벗어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연 공간. 도쿄 내 공원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유명한 요요기 공원은 현지인들과 여행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쉼터이자 다양한 문화활동의 장이다. 저번에 소개한 후글렌 카페가 요요기 공원과 가까워 플랫 화이트와 유기농 초콜릿 케이크를 아침으로 먹고 바로 산책을 나섰다. 공원으로 들어서자마자 단체로 춤 연습을 하는 청소년들이 보인다. 다른 구역에서는 중년의 어른들이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체조를 하고 있다. 낙엽이 덮인 나무숲에서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봄에는 벚꽃 스폿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요요기 공원에는 강아지들도 목줄을 풀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구역이 있다. 24시간 빼곡하게 바쁜 시부야에서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들이 여유를 지킬 수 있도록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공원이다.

 

요요기 공원에서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는 사람들 / (c)2023.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4. 패션과 서브컬처가 빛나는 동네, 하라주쿠(Harajuku)

    요요기 공원을 나서면 개성 넘치는 트렌디한 샵으로 가득한 하라주쿠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방향 감각은 깡그리 잊고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지는 즉흥적인 감각을 따르기로 한다. 공연 시작 전에 근처에서 저녁 먹을 시간 정도만 확보해두고, 원 없이 걸으며 상점들을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만나면 무진장 오래 입는 스타일이라, 하라주쿠에서 운명의 옷을 만날 준비를 단단히 해보았지만 눈이 뒤집히는 물건을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많은 상점들의 방대한 빈티지 의류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좁은 골목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하이팝 패션과 공연을 기획하는 젊은이들의 아지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PAT MARKET TOKYO) 심지어 이들의 공연에 초대까지 받았지만, 일정이 있어 아쉽게도 참여하지는 못했다. 우연에 마음을 열어두면 이처럼 재밌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한국에서 미리 사둔 도쿄 지하철 3일권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부야 곳곳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바쁜 일상의 틈을 벌려 만끽한 자그마한 도쿄 여행. 그중에서도 맛과 멋, 예술, 자연과 도시까지 탐닉했던 시부야 산책은 완벽한 즉흥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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